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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_5년 뒤 나를 만드는 곳

[대유행병의 시대] 사소한 것이 만들어내는 역사

경험이 없는 상태로 처음 거래선을 맡았던 신입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해보겠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겠지만, 신입에게 곧바로 큰 프로젝트를 맡기는 일은 거의 없다.

비교적 팀의 핵심과제와는 먼 일을 맡았고 내 안에 있던 자만과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더 잘 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작은 일을 맡기는 거지?'

지금 신입사원이 저런 생각을 한다고 하면 코웃음을 칠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내 실수로 거래선이 수백 만원의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

계약 관련 부서에게 한 번만 점검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였다.

나의 오만함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흘렀다.

 

교훈: 실력자는 디테일까지 잘 챙겨야 한다. 그것이 프로다. 

 

그후로는 세부사항에 관해서 가장 먼저 점검하고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 소개할 <대유행병의 시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싸우며 보여준 모습처럼 말이다.

 

 

천사의 도시에 찾아온 전염병

Los Angeles는 한인타운, LA 다저스 등으로 우리나라에게 가장 친숙한 미국 도시 중 하나이다.

(los라는 말을 스페인어에서 지명을 뜻하는 단어라고 알고 있다)

이 도시에서 1924년에 발생한 멕시코 이주민들 사이의 특별한 질병이 있었다.

프란시스카는 목구멍에서 그르렁 소기와 함께 기침이 발작적으로 터지는 증상을 보였고 헤수스는 사타구니가 심하게 부어올랐다. LA 시 보건공무원인 자일스 포터 Giles Porter 박사는 헤수스의 증상이 "성병에 의한 선염"이며 매독이 원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프란시스카의 발열과 기침은 독감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판단했다. 1)

결론적으로 포터 박사의 판단은 틀렸다.

이 병은 중세 유럽에서 전체 인구의 1/3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알려진 페스트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흑사병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데 이는 사망하는 사람의 손과 발이 시커먼 색으로 변해서 그렇다.

 

카운티 종합병원에 33명의 환자가 동일한 증세로 입원했고 그 중 31명이 죽을 때까지 이 병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처음에는 독감으로 판단했고 최종적으로는 "유행성 수막염"으로 진단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병리학자 조지 매너 George Maner 박사는 어쩌면 이것이 페스트 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환자의 가레를 채취해 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기겁할 만한 광경이 나타났다.

환자의 가래에는 교과서에서만 본 페스트균이 가득했다.

 

형태만 보고 확신할 수 없었던 매너는 병리학과장의 전임자엿던 로이 햄먹 Roy Hammack 을 찾아갔다.

그는 필리핀에서 복무할 때 페스트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있고 페스트균을 본 적이 있었다.

"맞습니다. 빌어먹을." 햄먹이 현미경으로 페스트균을 발견하고 외친 말이다.

 

 

페스트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질병이므로 의료계 종사자라면 분명히 한 번 이상은 봤을 것이다.

하지만 LA 보건공무원을 비롯해 카운티 종합병원의 그 어느 누구도 페스트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조지 매너 박사의 디테일 덕분에 LA는 그나마 조기에 페스트를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운은 준비된 자에게 따른다

필라델피아 살인마로 불린 재향군인병은 처음에는 원인 규명에 실패한 미지의 질환이었다.

랭뮤어 박사는 필라델피아 사건과 관련해 기자들에게 "이번 세기에 발생한 가장 큰 역학적 수수께끼"라고 언급했다. 2)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조 맥데이드 Joe McDade 였다.

그에 관한 저자의 설명을 잠시 살펴보면, 

푸른 눈에 안경을 걸친 맥데이드는 꼼꼼한 연구 방식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로, (중략) 해외에서 근무하다 돌아온 그에게 애틀란타의 업무(CDC)는 고되고 따분했다. 표준 검사법에서 벗어나거나 그 밖에 절차에 어긋나는 일은 권장되지 않았고, 정해진 알고리즘과 검사 절차를 철저히 따라야 하는 분위기였다. 3)
맥데이드의 경우 공중보건 미생물학 분야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이라 문제를 대하는 사고방식이 주변 동료들과 같지 않았고, 따라서 똑같은 관찰에서 동료들이 보지 못했던 답을 찾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가 걱정이 많고 완벽주의자라는 점도 영향을 주었다. 4)

CDC의 나병ㆍ리케차 부서장 찰스 셰퍼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맥데이드가 세기의 수수께끼를 해결했다'고 한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전혀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병이었다.

재향군인병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1976년 7월이며, 맥데이드의 문제해결은 1977년(미국 전 대통령 지미 카터의 취임) 1월에 이뤄졌다.

 

맥데이드는 그의 연구방식을 묘사한 표현 그대로 꼼꼼하게 관찰하고 집요하게 발견하려 애썼다.

그는 그 시도가 "농구장에서 잃어 버린 콘택트렌즈를 찾느라 10센티미터 높에서 바닥을 열심히 살펴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회상했다. 5)

그리고 이렇게 준비된 사람에게 운은 찾아오는 법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인트 엘리자베스 병원 환자들로부터 채취한 혈액을 우연히 발견했다. 6)

 

저자는 재향군인병을 해결한 한 과학자를 이렇게 칭송한다.

CDC가 활용할 수 있었던 모든 자원을 통틀어도 한 과학자의 결단력, 그리고 선입관과 일반적 사고 패턴에서 벗어나고자 한 의지가 없었다면 재향군인병의 원일을 밝힌 마지막 분석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7)

 

누가복음 16잘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 누가복음 16장 10절

예수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말을 덧붙인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오늘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직관적인 해석이 와닿는다.

 

어느 박사 출신 기업가도 자신의 옛날 박사 시절 이야기를 할 때, 눈이 빠질 뻔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현미경을 너무 많이 들여다봐서 힘들었다는 말을 하면서... 

아마 그 분은 이런 작은 것, 사소한 것, 세부사항,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림 1. 지겨움에 관한 어느 기업가의 이야기

 

 

이제는 우리가 삶에 적용해보자.

디테일이 차이를 만든다.

 

 

 

1) 마크 호닉스바움, 『대유형병의 시대』, Conneting, 2020, 94쪽

2) 같은 책, 243쪽

3) 같은 책, 234쪽

4) 같은 책, 250쪽

5) 같은 책, 251쪽

6) 같은 책, 254쪽

7) 같은 책, 263쪽